[아올뱀로] 버려진 아이

[아올뱀로] | 2019. 11. 3. 21:35
Posted by 피넬

 폭풍의 언덕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서풍이 불 때 태어난 아이는 검소하고 적이 없는 인생을 살고 남풍이 불 때 태어난 아이는 사치스러우며 많은 동료들이 따를 것이다. 북풍이 불 때 태어난 아이는 뛰어난 전투능력을 지닌 전사가 되고 동풍이 불 때 태어난 아이는 부귀와 영화를 누릴 것이다. 그리고 바람이 불지 않을 때 태어난 아이는 바람의 신이 될 운명이다. 전설의 마지막 문장은 누구도 믿지 않았다. 폭풍의 언덕은 그 이름답게 바람이 잠잠한 날이 없는 장소였다.

 하지만 누구도 믿지 못할 현실이 일어났다. 마을에서 사는 젊은 부부의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 폭풍의 언덕은 마치 그 탄생을 기다리는 듯이 늘 강하게 불던 바람을 잠시 죽였다. 언제나 바람이 불던 장소라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정적. 들리는건 잔잔한 바람소리가 아닌 마을 사람들의 웅성거림, 진통이 시작된 임산부의 고통스러운 신음소리. 수 시간이 흐른 후, 아이의 울음소리가 마을 안에 울려 퍼지자 마치 그 탄생을 기뻐하듯이 폭풍의 언덕에 다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 태어난 아이는 바람의 신이 될 것이다. 그 전설을 믿고 아이의 부모는 자신들의 아이에게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아이올로스는 그 이름에 걸맞게 걸음마보다 바람으로 타고 다니는 마법을 먼저 익혔고, 글자를 깨우칠 무렵 쯤 익힌 주문은 마을의 청년 마법사와 맞먹을 수준이었다. 아이의 부모와 마을 사람들은 이 아이가 장차 어른이 되면 마을을 지켜줄 수호신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아이올로스가 자라 친구들과 어울려 놀 나이가 되자,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아이올로스와 놀던 아이 중 한 명이 고열에 시달렸다. 처음엔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일이라고만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올로스와 함께 놀던 아이들이 하나 둘 씩 병이 나거나 크게 다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은 열병으로 시작하다 목숨이 위험할 수준의 병으로 번지거나, 단순히 넘어지기만 했을 뿐인데도 팔다리가 부러지는 등, 그저 우연이라 치부하기엔 이상한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불안함이 퍼질 무렵, 아이올로스의 부모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세상을 뜨자 사람들은 확신했다. 아이올로스는 바람의 축복을 받은게 아니라 저주를 받은 거라고.

아이 몰래 모인 어른들은 결론을 내렸다. 이대로 가다간 마을이 멸망할지도 모르니, 저 아이를 먼 곳에 데려다가 버려야겠다고. 처음엔 죽이자는 말도 나왔지만 아이는 이미 상당한 마법실력을 가진데다, 바람의 저주를 받은 아이에게 직접 위해를 가했다간 어떤 재난이 되돌아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서, 버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태어날 때는 사람들의 축복을 받았던 아이올로스는, 그렇게 마을에서 버려지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 웬 상자에 갇혀 있었고, 뚜껑을 열고 나오니 본 적도 없는 숲 속이었다. 처음엔 바람을 타고 마을로 돌아가려 시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몸에는 돌아올 수 없는 저주가 걸려있단 사실을 알아챘다.

 아무리 나이에 비해 머리가 좋을 지라도 아직 아이올로스는 어린 아이였다. 와본 적도 없는 곳, 거기다 주변 마력의 흐름을 보아 강한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장소. 식사라고는 어제 먹은 빵 한 조각이 전부라 배도 고팠다. 나름 지식을 모아 먹을 수 있는 열매나 풀을 찾으려 했지만 겨울이 다가오는 계절이라 변변한 나무 열매 하나 찾기 힘들었다. 하루종일 숲을 돌아다닌 탓에 거의 탈진 직전까지 간 아이올로스는 낙엽과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피워 그 옆에 누웠다.

 아이올로스는 이대로 있으면 탈진해서 죽는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예측했다. 하지만 아무리 앞날을 예측한다 해도 어찌 바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저 여기에 누워 탈진해서 죽느냐, 조금 더 움직이다 마수에게 잡아먹히냐, 기껏해야 그런 차이일 뿐이었다. 지친 몸은 납덩어리처럼 무거웠고, 불을 쬐고 있지만 손 끝이 조금씩 차가워 지는게 느껴졌다. 점차 눈꺼풀도 무거워지는걸 느꼈다. 아직 죽고 싶지 않아.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뜨려고 노력했지만, 지친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주변의 추위가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모닥불의 열기와 다른 열기였다. 진한 피의 향도 느껴지는걸 봐서는 마수일 확률이 높았다. 아무래도 먹이를 찾아 온 것 같았다. 최소 어떤 마수인지 보기라도 하자는 마음에 아이올로스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 눈앞에 서있는 그림자를 올려보았다.

 

 흉악한 마수라기엔 너무나 아름다운 붉은색이 눈앞에 있었다.

 

 검은 박쥐와 늑대형 마수를 거느린, 피보다 더 붉은 눈동자를 가진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어찌나 아름다운지 죽음의 문턱에 다다라있던 아이올로스가 그의 얼굴에 정신을 뺏길 정도였다. 말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자, 아름다운 사람이 입을 열었다.

 

버려진 아이인가.”

 

 아름다운 이는 한숨을 쉬더니 늑대에게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그의 충직한 하인은 낮은 울음소리를 내며 어린 아이올로스의 몸뚱이를 가볍게 들어 넓은 등에 태웠다. 폭신한 털가죽의 온기가 아이올로스에게 약간이나마 체력을 되찾아줬다. 그리고 어딘가로 가는 움직임이 느껴졌지만, 아이올로스는 딱히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았다.

 

 저런 아름다운 사람의 먹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여겨졌으므로.

 

 

 

 

 

 

 

 

 더 추워지기 전에 바람을 쐴 생각으로 성 밖으로 나온 뱀파이어 로드는 어린 소년을 주웠다. 아이에겐 저주가 걸려있었다. 미아의 저주. 그 저주에 걸린 사람은 저주를 건 사람이 지정한 장소에는 돌아가지 못한다. 말 그대로 사람을 버리기 위한 저주다. 그런 저주에 걸린데다 거의 죽어가는 상태의 아이를 보자, 로드는 어찌할지 고민했다. 그냥 버리고 가기엔 아이는 약해져 있어 얼마 버티지 못할테고, 그랬다가는 뒤가 찜찜할게 분명하다. 딱히 온정을 베풀 이유는 없지만 어린아이가 죽는걸 방치할 정도로 로드는 무자비한 존재가 아니었다.

 결국 로드는 아이를 자신의 성에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어느정도 자라 자신의 앞가림을 할 때가 되면 알아서 살도록 내버려 두면 되는 일이다. 어차피 어비스로 인해 영원에 가까운 삶을 사는 로드에게 있어, 아이가 자라는 몇 년 정도는 눈 깜빡하는 정도의 시간에 불과했다. 나중에 마을에 내려가 아이용 침대나 여러 자질구레한 물건을 구입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로드는 헬베루즈의 등 위에 기절해 있는 아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그 이후, 훤칠한 미남으로 성장한 아이올로스의 애정공세에 밀려 결국 연인이 되기까지 앞으로 십 년하고 조금 남은 미래를, 아직 로드는 깨닫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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